처음 비타를 구입한 것은 지난 10월 말이었다.
시험 스트레스를 받던 나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중고나라를 눈팅하던 도중, 삶이라는 별명을 가진 비타를 구입하고 싶다는 생각에 충동구매하게 되었다.
처음 비타를 구입했을 때의 그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짱짱한 라임오렌지색의 뒷면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처음으로 구입했던 비타는 커펌이 되어있는 기기였다.
게임기는 살지언정 게임을 살 돈까지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매일 밤마다 책상 한켠에 비ㅡ타를 두고 하고픈 게임을 몽땅 다운로드 받았다.
시험이 끝난 뒤가 기다려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128GB의 용량을 꽉꽉 채워서 게임을 다운로드 받은 직후 게임 불감증에 빠지고 말았다.
psp 에뮬을 돌려도, 비타 게임을 해도 기대만큼 재미가 없었다.
게임기 산 값이 아까워 매일 짬짬이 테트리스를 하기는 했지만, 역시 게임기를 괜히 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돌린 게임 중 하나는 다름아닌 파이널판타지 10이었다.
전에 파판14를 재밌게 했던 기억이 있어 시작했고 처음에는 2000년대 초 JRPG에 적응하지 못해 접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곧 티다와 유우나의 모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시험 한 시간 전에도 시험 생각보다 어떻게 해야 블리츠볼을 이길 수 있을지 하는 생각이 컸다.
주인공네 블리츠볼팀을 우승시키기 위해
매일 지하철을 타고 오가는 한시간 반 동안 수없이 게임을 껐다 켜가며 결승전을 플레이했고,
결국 경기 종료 몇 분 전에 교체 투입된 와카로 결승골을 넣은 그 순간에는 월드컵에서 한국 선수가 골을 넣은 것마냥 열광했다.
또 하나는 슈타인즈 게이트였다.
처음에는 주인공의 중2병 컨셉질에 아연실색했으나,
플레이하면 플레이할수록 그 스토리에 감정 이입이 되었다.
아무도 없는 동방에서 파판을 플레이하던 어느 겨울날,
여행의 진상을 파악한 주인공이 달빛이 눈부신 밤에 유우나에게 마지막까지 웃으며 여행하자고 약속할 때에는
눈물이 찔끔 흘러나오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임들을 과연 공짜로 플레이해도 되는 것일까.
처음으로 커펌 기기를 구입한 게 후회됐다.
어차피 공짜로 다운 받은 게임이니 초반이 재미 없으면 삭제하면 그만이라는 마인드로 게임을 하니,
게임 불감증에 걸렸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값싸고 편하게 게임을 즐기려던 내 얄팍한 수는, 아이러니하게도 게임과 멀어지게끔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 내 삶은 송두리채 바뀌었다.
즐기고 싶은 게임이 있으면 전부 제 값을 주고 정품 소프트를 구입했다.
당연한 것이지만, 여태 지키지 않던 것이었다.
착실하게 늘어갔다.
지죤박스처럼 산 걸 후회한 것도 있었지만 그런 시행착오 또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했다.
해가 바뀌면서 커펌 비타도 팔아치웠다.
불법 다운로드 받은 비타 게임을 즐기는 것이 부끄러워졌기 때문이었다.
비타는 내게 있어 에덴 동산의 선악과 역할을 한 셈이었다.
당연한 이치를 깨닫게 해준 비타를 잊지 않기 위해, 십수년이 지나도 갖고 있을 소장용 비타도 한 대 샀고
비타 소프트도 많이 구입했다… 덕분에 다른 게임기를 갖고 놀 시간이 없다
지난주 화요일에는 겨울에 구입했던 7년묵은 비타 1세대에게 파판10 팝스킨도 붙여줬다.
비타는 내 삶을 바꿔준 기기이다.
겨우내 게임에만 몰입하며 삶이 한 층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기는 하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사진첩을 정리하다 보니 게임 불감증에 걸렸던 지난 가을에 훨씬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었음을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ㅡ타가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쳤음은 달라지지 않기에
이ㅡ글을 올린다…
출처: 중세게임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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